보청기를 고민하시는 분들께서 매우 자주 하시는 말이 있습니다. 보청기를 끼기 시작하면 귀가 더 나빠진다던데 괜찮을까요라는 질문입니다. 주변 지인이나 인터넷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아직 불편함이 있어도 보청기 착용을 미루거나, 이미 보청기를 맞췄음에도 사용을 망설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 말은 과연 사실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보청기 착용 자체가 귀를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오해가 생기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보청기를 끼면 더 안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보청기를 착용한 뒤 귀가 더 나빠졌다고 느끼는 분들 중 상당수는 실제로 청력이 악화된 것이 아니라, 이전 상태와의 차이를 더 분명하게 인식하게 된 경우입니다. 보청기를 착용하기 전에는 잘 안 들리는 상태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불편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계셨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보청기를 착용한 뒤 일정 기간 사용하다가 다시 보청기를 빼면, 소리가 이전보다 훨씬 더 안 들리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는 귀가 나빠진 것이 아니라, 보청기를 통해 들리던 소리에 뇌가 적응한 상태에서 다시 소리 자극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생기는 상대적인 차이입니다.
보청기가 귀를 망가뜨린다는 오해의 출처과거의 보청기 경험이 이러한 오해를 만든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 보청기 중에는 소리 조절이 정교하지 않아, 과도하게 큰 소리를 전달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장시간 사용 시 피로감이나 불편함을 느끼고, 이를 귀가 더 나빠진 것으로 오해한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사용되는 보청기는 사용자의 청력 상태에 맞춰 필요한 소리만 증폭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피팅과 조정을 거친 보청기는 귀를 손상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귀가 아니라 뇌의 변화로 이해하셔야 합니다난청은 귀만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 소리를 처리하는 기능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뇌는 소리를 해석하는 데 점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 보청기를 착용하면, 갑자기 많은 소리 정보가 다시 들어오게 되면서 뇌가 이를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리가 시끄럽거나 피곤하게 느껴지면, 귀가 더 나빠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청력이 손상된 것이 아니라, 뇌가 다시 소리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보청기를 끼면 청력이 더 나빠진다는 말이 생기는 또 다른 이유보청기를 착용한 이후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청력이 조금씩 더 나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보청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이는 대부분 난청의 자연스러운 진행입니다. 특히 노화로 인한 난청이나 특정 원인에 의한 난청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았더라도 같은 속도로 청력이 변화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 변화를 보청기와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보청기를 안 끼는 것이 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난청이 있음에도 오랫동안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고 방치하면, 소리 자극이 부족한 상태가 지속됩니다. 이 경우 귀뿐 아니라 뇌의 청각 처리 기능도 점점 약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보청기를 착용하더라도 적응이 어려워지고, 효과를 느끼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즉, 보청기가 귀를 나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시기에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청각 기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보청기를 착용한 뒤 소리가 너무 크거나, 날카롭고 피곤하게 느껴진다면 이는 귀가 나빠진 것이 아니라 조정이 필요한 신호일 가능성이 큽니다. 보청기는 한 번 맞추고 끝나는 기기가 아니라, 사용자의 적응 상태에 맞춰 여러 차례 조정이 이루어지는 기기입니다.
불편함을 참고 계속 사용하기보다는, 소리 설정을 다시 점검하고 조절받는 것이 훨씬 바람직합니다. 적절한 조정만으로도 귀가 더 나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 사라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보청기는 청력을 소모하는 기기가 아닙니다보청기는 귀의 기능을 대신 사용하는 기기가 아니라, 부족해진 청각을 보조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근육을 쓰면 닳는 것처럼, 보청기를 쓴다고 귀가 닳거나 망가지는 구조는 아닙니다. 오히려 소리를 적절히 전달해 줌으로써, 듣기 위해 과도하게 힘을 쓰던 상태를 완화해주는 역할에 가깝습니다.
이 때문에 정상적으로 맞춰진 보청기를 사용하는 것이 청력을 더 악화시킨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이런 경우에는 점검이 필요합니다. 보청기를 착용한 뒤 통증이 생기거나, 이명이나 어지러움이 심해졌다면 단순한 오해로 넘기지 말고 점검이 필요합니다. 이는 청력 변화, 귀 상태 문제, 또는 보청기 설정과 관련된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귀가 더 나빠졌다는 의미와는 구분해서 판단하셔야 합니다.
몸에 불편한 신호가 반복된다면 사용을 중단하고 확인을 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정확하게 정리하면 보청기를 끼면 귀가 더 나빠진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설명은 아닙니다. 대부분은 상대적인 체감 변화, 난청의 자연스러운 진행, 또는 적절하지 않은 조정에서 비롯된 오해입니다. 정상적인 사용과 관리 하에서 보청기는 귀를 망가뜨리는 기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필요한 시점에 보청기를 착용해 소리 자극을 유지하는 것이 청각 기능 전반과 생활의 질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청기는 귀를 포기했다는 신호가 아니라, 귀를 관리하기 시작했다는 선택입니다. 귀가 더 나빠질까 봐 보청기를 미루기보다는, 현재의 불편함과 앞으로의 생활을 기준으로 차분히 판단해보시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 될 것입니다.
▶️ 송병진 전문가
- 보청기 전문센터 대표원장